11월이 되면 로마는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여름의 열기는 멀어지고 공기는 선선해지며, 낮 시간은 짧아집니다. 오후가 되면 낮게 내려앉은 햇살이 응회암 벽을 따스하게 비춥니다. 로마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단 하루뿐이고, 뻔한 유명 명소 세 곳에서 줄을 서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면 이 도보 코스를 추천합니다. 비교적 한적한 언덕의 고요함과 입장료 없이 성당 안에서 감상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꽤 많이 걸어야 하니 불편한 구두는 넣어두세요. 가을철 이슬에 젖은 돌바닥(삼피에트리니)은 생각보다 미끄럽고 오르막길도 제법 숨이 찹니다. 이 코스는 하루를 알차게 쓰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한다는 전제하에, 전체 구간을 걸어서 이동하도록 짰습니다.
오전: 첼리오 언덕의 고요함과 치르코 마시모로 내려가는 길
여정은 콜로세움 근처에서 시작합니다. 원형경기장으로 향하는 인파를 따라가지 말고, 등을 돌려 첼리오 언덕으로 올라가 보세요. 11월에는 나뭇잎들이 차분하게 물들기 시작해, 겨울이 오기 전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최근에 개장한 녹지 공간인 **첼리오 고고학 공원(Parco Archeologico del Celio)**입니다. 복잡한 도로 소음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최신 운영 시간은 로마 관광청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잔디밭 위에 놓인 고대 대리석 조각과 비문 사이를 한가롭게 거닐 수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유적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고 싶다면, 19세기 말 대규모 발굴 조사 당시 발견된 유물들의 출처를 설명해 주는 공식 관광 포털의 안내 페이지를 참고해 보세요.
공원의 유적들을 둘러본 뒤에는 길 위로 벽돌 아치가 가로지르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길, **클리보 디 스카우로(Clivo di Scauro)**를 따라 내려갑니다.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대성당(Basilica dei Santi Giovanni e Paolo) 앞을 지나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 분지까지 계속 내려가세요. 이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며 걸어서 20분 정도 걸립니다.
늦은 오전: 아벤티노 언덕 오르기와 오렌지 정원
치르코 마시모의 넓은 터를 가로질러 아벤티노 언덕으로 향합니다. 이 방향에서는 **클리보 데이 푸블리치(Clivo dei Publicii)**를 통해 올라가게 됩니다. 계속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거리가 짧아 금방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전망대 중 한 곳에 다다릅니다.
공식 명칭이 **사벨로 공원(Parco Savello)**인 **오렌지 정원(Giardino degli Aranci)**은 테베레강과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1월에는 짙은 녹색의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오렌지 나무마다 주황색 열매가 가득 열려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사벨리 가문의 옛 요새가 어떻게 오늘날의 정원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하다면 이 공공 공간의 역사에서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수도원 정문의 열쇠구멍으로 유명한 **몰타 기사단 광장(Piazza dei Cavalieri di Malta)**이 나옵니다.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이 늘 짧게 줄을 서 있습니다. 대기 줄이 너무 길다면 미련 없이 지나치셔도 좋습니다. 오렌지 정원에서 보는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우며,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까요.
아벤티노 언덕에서 강변으로 내려갈 때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마세요. 대신 강변 도로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보행자 전용 산책로를 이용해 보세요. 이 길은 건축가 라파엘레 데 비코가 1930년대에 설계한 보행로로, 언덕의 수풀 사이로 계단 및 테라스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점심: 테스타치오에서의 간단한 식사
강변 도로에 도착하면 **수블리치오 다리(Ponte Sublicio)**를 건너 테스타치오(Testaccio) 지구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격식 없이 편안하게 점심을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인 동네입니다. 시내 중심가의 관광객 대상 식당들은 피하고, 현지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테스타치오 시장(Mercato di Testaccio)**으로 곧장 향해 보세요.
이곳 시장 가판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로마식 길거리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습니다.
- 시장 가판대에서 파는 푹 삶은 소고기를 넣은 담백하고 짭조름한 파니노
-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신선한 생면 카초 에 페페 파스타
- 갓 튀겨내 치즈가 쭉 늘어나는 클래식 수플리
- 모르타델라 햄을 채워 넣은 로마식 피자 비앙카 한 조각
시장 중앙에는 함께 사용하는 공용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빠르고 저렴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동네 주민들도 자주 찾는 곳입니다.
오후: 역사 지구에서 카라바조 작품 찾아보기
점심을 먹은 뒤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역사 지구로 이동합니다. 대중교통 요금과 티켓에 관한 최신 정보는 ATAC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후의 목표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성당 세 곳에 보존된 **카라바조(Caravaggio)**의 걸작들을 찾아 떠나는 여정입니다.
모두 몇 블록 안에 모여 있어 걸어서 둘러보기 좋습니다.
-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Chiesa di San Luigi dei Francesi): 판테온과 나보나 광장 사이에 있습니다. 성당 내부의 **콘타렐리 예배당(Cappella Contarelli)**에서 성 마태오를 주제로 한 세 점의 회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은 왼쪽 회랑 끝에 있습니다. 그림을 밝히는 조명을 켜기 위해 1유로짜리 동전을 몇 개 준비해 가세요.
- 산타고스티노 성당(Chiesa di Sant'Agostino): 이전 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이곳 왼쪽 첫 번째 예배당에는 **순례자들의 성모(Madonna dei Pellegrini)**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림 전면에 그려진 서민들의 더러운 발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당대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작품입니다.
-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 Popolo): 아직 걸을 기운이 남아 있다면 리페타 거리를 따라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까지 올라가 보세요. **체라시 예배당(Cappella Cerasi)**에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과 성 바오로의 개종이 있습니다.
이 예술 코스는 가을철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에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그림들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다면, 이 롬바르디아 출신 화가의 로마 내 작품들을 다룬 전용 코스 안내를 참고해 보세요.
늦은 오후: 테베레강에 내리는 빛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강변을 따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해 보세요. 11월의 일몰은 오후 5시쯤으로 꽤 이른 편인데, 붉게 물든 하늘이 강물에 그대로 비쳐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냅니다. 천사성(Castel Sant'Angelo) 방향으로 강변을 따라 걷거나 **움베르토 1세 다리(Ponte Umberto I)**로 올라가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사진으로 남겨보세요.
저녁 시간대 이동을 위한 지하철 최신 운행 시간은 ATAC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테르미니역이나 다른 지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 지하철 운행이 중단된 후에도 주요 버스 노선이 심야 버스로 계속 운행되지만 배차 간격이 크게 늘어납니다.
